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넌 몇 살까지 살고 싶어
- 주제분류
- 자유주제
- 대표자
- 박인선
- 작품의도
- 난 30살까지 살고 싶다. 내게 미래는 설렘보다 불안이 더 크다.
나는 친구들과의 대화 중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, 감당해야 할 부담의 형태를 지닌다는 내 생각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. 나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오래 살고 싶어하는 걸까 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. 그들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? 그들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면 나도 오래 살고 싶어질까?
늙었다는 건 살아남았다는 것이라는 말에서.. 나는 살아 남은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. - 줄거리
- 서른 살까지만 살겠다고 마음먹은 19살 인선. 친구들과 대화 중 대부분의 사람은 오래 살고 싶어한다는 것과 삶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. 자신도 의미를 찾으면 오래 살고 싶어질까 라는 궁금증을 갖게 된 인선은 친구들과 함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. 이들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를 만나 끝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다. 정답 없는 여정의 끝에서 인선은 죽음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아닌,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모험 같은 살겠다고 다짐한다.
- 별점
-
네티즌 리뷰 & 평점
작품평 1건- 김관우
공감 됩니다. 사는 건 가끔 정말이지 불쾌합니다. 벽을 주먹으로 쳐서 멍을 만들고 싶습니다. 하지만 죽는다면 이 모든 기쁨과 고통을 느끼게 해주는 그 무엇이자, 자각하게 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에 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. 분노와 우울을 표출할 수 있지만 그것도 자신이 삶 안에 있다는 전제 속에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. 방이 있다고 할 때, 삶을 불이 켜진 상태로 보고 죽음을 불이 꺼진 상태로 생각하지만 사실 죽음은 공간의 소멸이며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. 이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삶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.
2025-11-06
이런 생각도 했습니다. 삶이 끔찍해서 죽기를 원한다면, 내심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끔찍한 고통을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닐까?
하지만 결국 사람은 죽는대요.
삶이 지속되는 것은 정말 고통입니다. 기쁨도 있지만 고통이 더 많은 듯합니다.
물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삶은 나에게 행복할 것이라는 약속을 한 적이 없습니다. 나는 죽는 날까지 욕망하고 충족되지 않은 그것에 고통스러워 합니다.
정말이지 초라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. 병상에 누워있는 나를 떠올리면 말입니다. 의욕이 사라집니다.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. 누구를 탓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무의하게 느껴져 관둡니다.
그러나 죽음 또한 고통이자 두려움입니다. 갈증 속에서 기묘한 애정 따위로 목을 축이고 있습니다.
사람들은 "뭐 이런 주제가 다 있어?"라며 이 영상을 폄하할지도 모르지만, 틀린 말은 아니라고 현재의 저는 생각합니다 -사람은 언제나 달라지기 때문에.
삶의 부조리-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-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속에서 사람들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-생각보다 무지하고, 알 수 없는 믿음으로 엮인-을 들여다보고,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며 끝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. -어떻게 보면 삶에 비관적인, 일말의 희망도 없는 영화는 볼 이유가 결여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.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? 결국 삶은 흘러가기 때문에.
본 지 며칠 후에 적습니다. 기억이 났습니다.
(익명으로 굳이 하지 않겠습니다. 사람들은 별로 타인에 관심이 없으니까요. 조급한 건 자신 뿐인 것 같습니다.)






